수의학과에 입학한다면 누구나 한번쯤 말 수의사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봤을 것이다. 반려동물도 농장동물도 아닌 말은 혼자만의 독특한 분야를 이루기 때문이다.
제주대학교 말임상실습
말 임상실습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16년 제주대학교 학점교류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예과생 때, 제주대학교에서 스킨스쿠버와 요트 수업을 학점교류로 다녀온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익숙한 곳으로 향했다.
2016.06.27. – 2016.07.08. 제주도의 맑은 날씨 아래 2주간 제주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오전에는 이론수업과 오후에는 실제 실습이 진행되었다.

살아있는 말을 대하는 것부터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본 보정법과 신체적 특성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 질병에 대한 이론과 붕대처치법, 마취방법, 파행진단법 등 기초적인 이론과 실습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실습을 끝내며 제주대학교 말 전문병원이 세워지는 중이어서 직접 못본채 돌아와 아쉬웠고, 육지사람들과 달리 말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제주도인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 날에는 직접 승마체험도 할 수 있어서 참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말 전문 수의사가 되고 싶을 정도로 호기심을 충족하고 말과 밀접한 실습을 진행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마사회 말임상실습
말과의 두번째 만남은 바로 다음해 겨울, 서울 과천 경마장에서였다. 우리나라에서 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장 대표적인 기관인 한국마사회에서 실습하게 된 것이다.
2017.02.01. – 2017.02.26. 서울의 집에서 과천까지 겨울바람을 뚫고 출퇴근하며, 방학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의지로 주말을 포함한 한 달간 마사회에서 말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마사회에서는 수의사분들이 실제 진료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배울수 있어서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개별적인 케이스를 이해하며 따르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아서, 진료가 비는 시간에는 마사회에 진열된 여러 말 관련 서적들을 뒤적이며 궁금한 것들을 스스로 채워나가야했다.
경주마들이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오는 것부터 시작하여, 파행을 보이는 말을 x-ray와 초음파, 국소마취를 통해 진단하는 케이스, 퇴행성 질환으로 관절에 골파편이 있어 수술을 진행한 케이스, 그리고 경주 도중에 갑자기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케이스 등 정말 하루에도 다양한 임상케이스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경주마는 1-2세의 어린 말들이 주로 뛰기 때문에, 사람으로 해당하면 성장기의 어린아이들이 정형외과에 오는 것처럼 근골격계와 관련된 케이스가 주를 이루었다. 말의 긴 몸체의 특성상 장이 꼬이거나 하는 경우로 산통이 잘 발생하는데, 내가 실습하는 중에는 많이 보지 못해 다행스러우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말이 급사하면서 사망원인을 찾기위해 부검하는 경우가 꽤 있었고, 나는 운이 좋게도 부검실에 10번 정도 다녀가며 여러 케이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심장에 선천적인 기형이 발견된 케이스, 말이 놀라 뒤로 자빠지면서 두개골이 깨진 케이스 등을 직접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말 임상적인 실습 외에도, 실제 경마가 열리는 날에 각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수의사분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다. 특히 경주가 시작되면 달리는 경주마의 이상을 실시간 파악하기 위해 뒤따라붙는 자동차에서도 수의사분이 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실습하는 한 달동안 함께하는 말들과 교감하며, IVSA 행사로 외국인 친구들이 다녀가기도 하고, 외국에서 오신 말 수의사 및 말 장제사 분들과 교류하면서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 함께했던 다른 예비수의사 형누나들과 함께 동거동락한 한 달이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